길을 잃어서 잠시 여기에 써두는 글
슈퍼내추럴의 15시즌 종영을 맞이하며 이별에 관하여.
내가 기억하던 가장 어린시절부터 계속 한 집에 살아왔던 삼촌댁은 내가 20대 초반이던 즈음 이사를 하셨다.
유난히 가족모임을 좋아하던 그들은 가족행사를 자주 가졌고, 그때마다 뒷풀이 장소는 좁은 삼촌댁이었다.
명절도, 생신도, 누군가의 방문, 누군가의 축하 행사, 어디로 가든 마지막은 항상 삼촌댁과 삼촌 동네로 귀결되었다.
좁은 삼촌댁에서 어두운 오빠들 방에서, 우리는 그 안에 꾸역꾸역 들어가 앉아 웃었고 놀았다.
그리고 삼촌이 마침내 더 넓고 환한, 깨끗한 큰 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셨을때 나는 그것을 축하해야함을 알면서도 내가 봐온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마침내 끝난다는, 두꺼운 책을 드디어 다 보고 책장을 닫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상당히 울적했고 삼촌의 새 집을 보면서도 어색한 기분을 어쩔줄 몰라했다.
항상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변하지 않을거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게 항상 여기에 있어서 다들 벽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도 문이라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슈퍼내추럴이 그랬다.
시즌12가 후반을 달릴즈음 나는 이 드라마를 처음 보았고, 4개월만에 12시즌을 따라잡고, 파이널을 보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시즌13 파이널을 보면서 욕도 하고, 시즌14가 시작하면서 나는 조금씩 시들해졌다.
그래서 떠나는건 네가 아니라 내가 될 줄 알았지.
시즌5를 파이널 에피로 잡고 각본을 썼어서 그런지, 시즌5를 진엔딩이라 하는 말들도 많았고, 수없이 연장된 시즌들을 이어가느라 점점 망가지는 스토리와 캐릭터들이 화가 나서 이럴거면 그만 두라고, 끝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시즌5 이후로도 훌륭하고 멋진 이야기들도 많았기 때문에 나는 '진엔딩' 말에 대해선 동의하면서도 예의는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굳이 그 시점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부터 슈내는 브레이크를 밟아야할 때를 놓치긴 했다.
확실히 우리는 '끝'을 말할 시점에서 너무 멀리 왔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더 망가지고 더 오염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끝내서 남은 자존심만이라도 지켰으면 하는 마음과, 한편으로는 어차피 이미 종영시기 놓친거, 더 가자. 더 해보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CW가 슈내를 쉽게 놓아줄거란 생각을 하지 않기도 했고.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장된 수입원을 쉽게 보내주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15시즌이라면 쉽게 보내주는게 아니긴 하지. 그래도 난 정말 더 할줄 알았어. 그정도로 자본주의의 돼지들은 아니었는지.
미샤 콜린스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랑에 있어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지는것이 아니라 이기는 것이라는 거였다.
왜냐하면 미샤는 팬들의 사랑으로 인해 살아가는 거니까. 팬들의 사랑으로 쇼가 연장되고, 팬들이 사랑해서 그의 활동을 지지하고 함께해주기 때문에 그의 생계가 유지되고 그의 직업이 유지되니까.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그대로 끝이 나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이 지는것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사랑에 있어서 이기고 지고를 따지는 것이 보통의 사랑이라 말할수는 없지만, 내가 미샤에게 되돌려받지 못하는 답없는 짝사랑을 스스로 위안할 방법은 이것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떠나더라도 떠나는 것은 나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당신이 날 먼저 떠난다.
그래서 나는 또 지는 기분을 느끼고 있어.
답없는 짝사랑을 하면서 괴로운 것은 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울어도 당신에겐 아무런 영향도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나는 이 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내 사랑이 당신을 이길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당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더라도 당신에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당신은 내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니까.
나처럼 하나 둘 떠나면서 그 수가 수십 수천이 된다면 그제야 비로소 당신에게 영향이 있겠지만 나 하나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이기면서 진다.
내가 아무리 슈퍼내추럴의 결말과 대본을 바꿔 써도 쇼에는 어떠한 영향도 닿지 않고, 쇼가 지속되는 것도, 쇼가 끝나는 것도, 카스티엘 캐릭터가 망가지는 것도, 나는 어떤것도 할 수 있는것이 없다.
그것이 나를 너무 무력하게해.
나는 아직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괜찮아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이제 이 쇼는 내 일부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가던지, 내 안 어딘가에서 화석처럼, 원래 있던 벽처럼 그렇게 자리잡아가겠지.
결국 우리에게도 끝은 왔다. 영원히 계속될거라 생각했던 책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혔다. 곧 책을 덮을 시간이 올거다.
예정된 미래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시한부처럼 살아가는 것은 괴롭기 짝이 없다.
돌아갈 날이 정해진 여행의 순간들과, 차기 감독이 내정된 스포츠 클럽의 현 감독의 경기를 지켜보는 것들.
그저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밖에 할 수 있는것이 없는 무기력한 상황들.
난 아직 이 감정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어쩌면 이별을 준비할 시간들이겠지만, 일방적인 이별과 떠나는 이를 보내는 남아있는 자의 위치에 있는 나는 이것이 공평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것을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라 부를 수 없다.
이것은 일방적이기 때문에 체념의 시간이고 억지로 받아들이는 시간일 뿐이니까.
그리고 이제 그 폭력을 슈퍼내추럴이 내게 행사하고 있네.
나는 또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는 채로 가만히 마음을 접고 이별을 당하길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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