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넛이 먹고싶은데 도넛 사러 갈 수가 없어서 꿩대신 닭으로 넷플릭스에서 달콤한 디저트 만드는걸 보다가 Nailed it까지 보게 되었다. 슈가러시는 진행방식이 맘에 안들어서 한편보고 하차함.
<< tmi를 뿌리자면 제가 수술하고 아직도 회복중이라 도넛가게까지 걸어갈수가 없어요 택시타면 5분인데 그 거리를 택시타고 가고 싶지 않아 도넛값보다 택시비가 더 나오게 생김ㅠㅠ>>

파티셰를 잡아라는 이미 유명한 예능이라 나도 들어본적이 있었고, 대략적으로 '요리고자들이 경연대회 나와서 멋진 작품을 완전히 뭉개진 모습으로 만들어내는게 재밌는 프로그램'이라고 알고있었다. 반쯤은 맞는데, 반쯤은 틀린거 같다.
일단 예상과 같았던 것은, 아마추어 베이커들이 나온다. 제목이 파티셰라고 번역되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걍 baker다. 아마추어 베이커들. 물론 일상 작품들을 보니 지원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못하는 사람들을 엄선해서 데려온것 같긴 하지만 아무튼 베이킹을 하긴 하는데 손재주는 썩 좋지 못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예상과 달랐던 것은, 고난이도의 완성작을 만들기엔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1라운드는 45분, 길어야 1시간이고 2라운드는 1시간 45분에서 최대 2시간정도까지 주어진다. 물론 요리 경연대회에 시간제한은 필수지만 '아마추어'가 '고난이도'의 작품을 만들기엔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은 저런 뭉개진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다. 내 실력이 부족해서 뭉개진 작품을 결과물로 내보내는게 아니라 제한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해서 뭉개진 작품을 만들게 하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래서 약간 실망스럽긴 했다. 요리고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그지같은 케익을 만드는 재미를 보고싶었는데 어쩔수없이 그지같은 케익을 만들도록 유도하는건 별로 재미가 없다. 하지만 진행자 니콜의 재치있는 입담과 진행으로 즐겁게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유도했다해도 결과물들은 정말 웃기긴 하다ㅋㅋㅋ

다른 경연 프로그램보다 마음에 들었던 진행방식은, 참가자들이 모두 1회성 참가자이다. 서바이벌 경연대회는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팀이 있고, 정든 팀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팀이 우승하지 못하고 떨어지게 된다면 꽤나 마음아프고 실망하게 된다. 그들이 한 노력을 알고 그들의 절실함을 알지만 더이상 그들을 볼수 없고 응원할 상대가 없어진다는 것에 큰 실망을 겪게된다. 하지만 파티셰를 잡아라의 참가자들은 이번 한 편을 위해 출연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두개의 과제를 통해 두명의 우승자를 뽑는다. 최소 한명에서 최대 두명은 prize를 가지고 가게 되니 보는 사람의 마음도 편하다.(물론 1라운드도 2라운드도 아무것도 못 받은 사람은 좀 짠함..흑흑) 킬링타임용으로 정말 적절한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우승자들의 소감이 정말 인상깊었는데, 보기만 해도 식욕감퇴 되는 결과물을 만든 당사자임에도 그들은 (결과물의 퀄리티와 상관없이) 이 '도전' 자체를 매우 의미있게 여기고 본인의 '노력'을 굉장히 뿌듯해한다. 오늘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앞으로 더욱 도전할 것이고 내 자녀에게도 계속해서 도전하라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라는 메세지를 전해줄 수 있다는 그들의 소감은 이 프로그램이 그저 가벼운 우스갯거리가 아니게 만들어준다. 나이와 성별, 직업에 상관없이 도전을 즐기고 시간안에 최선을 다하는 참가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마음가짐을 보며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교훈적인 내용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것처럼 엉망인 작품을 만들게 하는 것을 과연 재미로만 볼 수 있을까? 종종 케익이나 쿠키가 다 익지 않아서 미완성 결과물을 제출하는 참가자들이 있고, 심사위원들은 익지 않은 케이크를 먹고 곧장 입에서 뱉어낸다. 그럼 경연이 끝나고 이 케익들은 다 어디로 갈까?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게 아닐까?
재미야 있지만 어쨌든 냉정하게 보자면 이 프로그램은 확실히 재료낭비, 음식낭비에 조금 더 과하자면 음식으로 장난치는 프로그램이다. 일부러 음식을 망치도록 유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가 이걸 보고 웃어도 되는걸까?
어느 나라에선 음식이 넘쳐나서 하루에 폐기하는 량이 어마어마하지만 어느 나라에선 그 한끼를 먹지 못해 사람들이 죽는다. 수십톤의 물을 사용해서 만든 새 옷들이 버려진다. 그 물이 없어서 누군가는 죽는다. 어느 누군가에겐 넘쳐나는 자원이 어느 누군가에겐 생사의 갈림길이다. 이런 사치스러운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 있는건 자원이 많은 나라의 특권인걸까?
물론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등의 매체에 언제나 같은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건 어려운 일이긴 하다. 폭력은 나쁘고 성폭력은 더 나쁘지만 그러니까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절대 사용을 해선 안된다라고 강제할 수 없다. (물론 대놓고 사용 안하고도 잘 만드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꼭 필요해서 넣었다는 것도 이해는 하지만 굳이 적나라한 장면을 넣지 않고도 폭력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런 창작자들이 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표현방법을 찾을 노력은 들이지 않고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는거니까.) 그렇기에 이런 버라이어티쇼 하나하나까지 도덕적 검열을 하려 든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질수 있지만, 파티셰를 잡아라는 확실히 게으른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렇게가 아니고서도 웃을수 있는 방법이 많다. 자원낭비를 하지 않고도 즐거울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와 낭비와 폭력을 사용해서 웃는건 21세기인 지금에서는 굉장히 1차원적이고 게으르다.

수없이 많은 재료들이 낭비된다. 매 회차마다 만드는 케익에 들어가는 달걀, 밀가루, 버터, (그중 일부는 땅에 떨어져서 못쓰게 된다) 그럭저럭 먹을만 한 결과물은 가져가서 먹을수도 있겠지만 다 익지 못해 찰랑거리는 케익이 되지 못한 덩어리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재료실에 있는 재료 중 몇몇 참가자가 손으로 집어먹은 재료들은 어떻게 되는걸까? 전부폐기하면 낭비이고 재사용 한다면 그거대로 문제다.
예능에 너무 진지하게 구는게 아니냐고 말할수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은 실제 자원을 사용하는 현실이고 낭비는 현실이다. 회차가 거듭할수록 낭비는 심해진다. 어느 환경운동가들은 자원을 생각해서 옷마저도 구제의류만 사입고 있는데 어느 티비 프로그램은 매 회마다 식료품들을 낭비하고 있다.
이걸 보고 웃어도 되는걸까? 과연 이게 웃긴걸까? 파티셰를 잡아라를 보고있으면 20년전 개그콘서트를 보고있는 기분이다. 여성혐오, 장애인비하, 온갖 혐오와 차별을 개그란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표현하고 그걸 보며 웃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개그콘서트는 망했다. 사람들은 더이상 혐오와 차별에 웃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도태된다. 파티셰를 잡아라는 시대역행적인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이걸 보고 있으면 재밌지만 불편하다. 생각없이 가볍게 보고싶어서 보고 웃지만 프로그램이 끝나면 어두운 쓴맛이 느껴진다. 마냥 웃을수가 없다. 한번 들기 시작한 이 생각들은 찰랑이는 케익 반죽을 꺼내는 참가자를 볼때마다 불편하게 다가온다. 재밌긴 하지만, 그저 웃으면서 볼수만은 없는, guilty pleasure 그 자체이다.

하지만 웃기긴 해.... 하지만 다른 방법으로 더 재밌게 해줬으면 좋겠어... 이 프로그램의 재미중 반은 니콜이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니콜의 진행 너무 재밌어... 그런데 그 진행을 다른 곳에서 더 볼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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