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기간 보고싶어했던 밤쉘이 드디어 넷플릭스에 올라와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컨텐츠를 볼 때 웬만하면 사전정보를 정말 안찾아보는 편이라 뚜껑 열어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정말 많은데(스쳐지나가는 영포프, 쓰리 빌보드, 엄브렐라...) 밤쉘도 당당히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일전에 밤쉘과 히든피겨스를 착각하고 히든피겨스를 본 적이 있었는데(매우 만족, 하지만 아쉬움이 조금 남는) 그래서인지 밤쉘도 제목만 보고 여성 공학자들 이야기인줄 알았다.. bomb이라길래... 그래서 영화 틀고 트럼프 나왔을때 되게 당황했음 뭐지, 왜이렇게 현대야?
세명의 여자가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건 히든피겨스와 닮았고 재밌었다. 여성차별에 맞서는 여성서사 페미니즘 영화라서 정말 좋았다. 두 영화 모두 여성서사이고 불의와 싸우고 이기는 내용은 닮았지만 이상하게 밤쉘은 결말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 히든피겨스는 유리천장과 싸웠다면 밤쉘은 성폭력과 싸웠기 때문이겠지. 또한 여전히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존재하고 있지만 그래도 많이 변화하고 있는, 쉽게 말해 나랑 좀 멀리있는 문제로 느껴진다면 성폭력은 당장 나에게도 발생할 수 있는 너무 가까이에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말이지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었다. 미국의 폭스라는 대형 그룹에서, 2015년에,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이 시대에, 21세기에 이런 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었다는 것이. 아무리 세상이 나아지고 있다고 한들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있다. 하긴 생각해보면 와인스타인 문제가 터진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고 미투운동이 크게 시작된 것도 10년이 지나지 않았다. 인류는 굉장히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지나치게 느리고, 또 퇴보하고 있다. 그리고 특히 여성 문제는 더욱 그렇다.
처음엔 그레천과 함께하지 않는 케일라가 원망스러웠지만 과연 케일라를 욕 할 수 있을까? 케일라는 그저 야망있고 열정있는 젊은 사람이었고 자신이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로저의 눈에 들고자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부분은 너무 안타까웠지만 한편으론 그녀를 책망할수 있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니까. 그녀가 바지를 입고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면 과연 누가 직장에 그 불편한 엉덩이나 겨우 가리는 원피스를 입고 출근을 할까. 내 능력만으로도 성공이 가능하다면, 성적인 어필 없이 능력으로 눈에 띌 수 있는 세상이라면. 애초에 보스가 여자였다면.
그레천이 해고당한 후 그를 고소한 것도 더이상 잃을게 없기 때문에 터뜨릴수 있었고, 폭스 안의 수많은 여성들이, 다리를 내놓고 짧은 치마를 입길 강요당한 여자들이 로저를 두둔하고 감싸는건 그다지 놀랄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계가 걸려있으니까, 내가 내 회사 사장에게 등을 돌린다면 잃을게 더 많은 것은 자기 자신이니까. 너무 안타까웠다. 팀 로저가 적힌 티셔츠를 입는 여성들의 마음이 과연 자의였을까? 사회와 자신의 환경이 자긴 로저의 편이라고 생각하도록 밀어넣은건 아닐까?
빅쇼트 제작진이라서 그런지 영화 스타일이 좀 어려운 편이긴 했다. 내가 미국인이 아니고 그쪽 사회이슈를 실시간으로 접한게 아니라 그런지 좀 어렵다고 느꼈다. 물론 쉽게 설명한 영화긴하지만 영포프와 비슷한 갈래로 친절한 영화는 아니라고 느꼈다.
케일라가 딱붙는 원피스를 입고 로저를 만나러 갈 때, 작정하고 그렇게 입고 온 것은 알았지만 그가 이미 로저를 파악하고 옷을 그렇게 입고 온건지 아니면 스스로 성적대상화를 해서 몸로비로 자리를 따내려고 한건지 그런 부분이 좀 애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그렇게 만든 사회를 원망하지 그녀를 원망하진 않음.)
그리고 불편했던 점은 케일라에게 치마를 들춰보라고 하는 씬이 지나치게 길고 불편하게 연출됐는데, 그게 '자 역겹지 얘가 이렇게 나쁜놈이다' 하고 역겹게 연출해서 불편한게 아니라 굉장히 성적인 의미로 불편했다. 분명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불쾌하게 연출할수 있는데 일종의 서비스씬처럼 연출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감독의 성별을 탓하고 싶진 않은데 이 장면을 여자 감독이 연출했어도 저런 연출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음.
어쨌든 전체적인 감상으로는, 이 영화가 나와서 좋았지만 씁쓸함이 많이 남았다.
불의와 싸워 이겨 승리하는 여성서사가 좋았지만 더이상 이런 주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묻어두자는게 아니라, 더이상 여성들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아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여성영화가 필요하고
더 많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여성들이 승리하길 바라지만
더 이상 여성들이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
여성들이 승리한 이야기가 많이 퍼지길 바라지만
그럴 상황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폭력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할 여성의 이야기는 아주 많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도 될 사회가 오길 바란다.
하지만 그 전까진 계속해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들을수 있길 바란다.
*여담
밤쉘Bombshell의 사전적 뜻이 두가지 있는데
bombshell 미국[│bɑːmʃel]발음듣기 영국식[│bɒmʃel]발음듣기 1 (불쾌한) 폭탄선언, 몹시 충격적인 일[소식] 2 아주 섹시한 금발 미녀 |
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주인공 세 여자가 금발이었고 두가지 의미로 잘 선택한 제목이라 생각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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